주말에 『기생충』을 다시 봤다. 몇 년 만인데도 폭우에 반지하가 잠기는 장면에서는 여전히 숨이 막혔다.
그러다 이상한 걸 깨달았다. 이 장면을 처음 본 게 아니다. 1927년 『메트로폴리스』에 이미 있었다. 지상엔 빛나는 마천루, 지하엔 기계를 돌리는 노동자들. 『블레이드 러너』의 비 내리는 거리와 피라미드 모양 본사도 같은 구도였다. 『설국열차』는 그 수직축을 옆으로 눕혀 놨을 뿐이다.
100년이다. 상상력이 이렇게 게으를 수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다. 게으른 게 아니라, 같은 불안을 계속 돌려 보고 있는 것 아닐까.
금융에는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게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집어넣고 결과를 보는 작업이다. 그 시나리오가 실제로 온다고 믿어서 하는 게 아니다. 오면 얼마나 깨지는지 알아야 자본을 얼마나 더 쌓아둘지 정할 수 있어서 한다. 결과가 끔찍할수록 좋다. 끔찍한 숫자를 미리 봤으니까.
영화 속 지하도시가 그렇다. 예보가 아니라, 인류가 100년 동안 돌려 온 테스트의 출력값이다.
그런데 이 테스트, 꽤 잘 맞았다
여기서부터가 불편하다.
슬럼이나 무허가 정착지에 사는 사람은 11억 6,000만 명이다. 전 세계 도시 인구의 24.8%, 그러니까 도시에 사는 넷 중 하나다.
흥미로운 건 비율과 사람 수가 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비율은 2000년 30.6%에서 24.8%로 내려왔다. 개선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슬럼 거주 인구는 2억 7,900만 명이 늘었다. 그중 1억 3,600만 명은 SDGs가 시작된 2015년 이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개선율은 올라가는데 대기줄은 길어지는 중이다.
더 눈에 걸린 건 인프라 쪽이다. 도로, 전력, 통신을 공공이 깔아 도시 전체를 하나로 묶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반대 방향이다. 유료 민자도로와 자체 전력망, 생체인증 게이트로 둘러싼 구역이 따로 생기고, 같은 도시 안에서 물과 전기가 불안정한 구역이 그 옆에 남는다.
이 갈라짐은 영화보다 조용하게 온다. 스크린에서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어느 동네에 광케이블이 안 들어오고 응급실까지 40분이 걸릴 뿐이다. 담장도 없고 경비병도 없다. 그런데 결과는 같은 방향으로 쌓인다.
일자리 쪽 숫자도 만만치 않다. IMF는 2024년 보고서에서 전 세계 일자리의 약 40%, 선진국은 최대 60%가 AI에 노출돼 있다고 봤다.
영화가 과장한 건 배경 미술이었지 방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래를 업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안 쓴다
데이비드 오터는 아예 되묻는다. 기계가 그렇게 많은 일을 가져갔는데 왜 아직 일자리가 이렇게 많으냐고. 기계가 규칙대로 되는 일을 가져갈수록, 기계가 못 하는 판단과 관계와 감의 가격은 올라간다는 게 그의 답이다. 미국 농업 종사자 비중은 1900년 41%에서 지금 2% 수준으로 무너졌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실업자가 된 게 아니라 이동했다.
대런 애쓰모글루의 계산은 더 서늘하다.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임금 불평등이 벌어진 폭의 50~70%가 자동화에 의한 업무 대체로 설명된다. 양극화는 실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의 결론은 숙명론이 아니다. 기술이 인건비를 깎는 데 쓰일지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데 쓰일지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제도와 권력이 정한다는 것이다.
미래학도 마찬가지다. 학문으로서의 futures studies는 하나의 미래를 맞히는 경기가 아니다.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대응 근육을 키우는 쪽에 가깝다. 소하일 이나야툴라의 분석틀은 문제를 표면 통계, 시스템 구조, 세계관, 그리고 가장 깊은 층인 신화와 은유로 나눈다. 영화 속 지하도시는 정확히 그 마지막 층을 건드린다. '인간은 쓸모없어진다'는 무의식의 공포 말이다. 그 층은 분석 대상이지 예보가 아니다.
실증도 하나 있다. 샘 알트만이 돈을 댄 3년짜리 기본소득 실험에서, 매달 1,000달러를 조건 없이 받은 집단의 고용률 하락은 2%포인트 수준에 그쳤다. 마지막 해에는 교육·훈련 프로그램 등록률이 대조군보다 14% 높게 나왔다. 돈이 생기면 인간이 무용해진다는 가설은 적어도 이 표본에서는 기각됐다.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쪽이다
이제부터는 자료가 아니라 내 판단이다. 틀릴 수 있다.
나는 AI가 무서워서 이 시나리오를 다시 보는 게 아니다. 인프라 때문이다.
일자리는 결국 움직인다. 사라지면 다른 데서 생기고, 사람도 따라간다. 100년 데이터가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한번 갈라진 전력망과 통신망, 의료 접근권은 다시 붙지 않는다. 노동시장은 흐르는데 인프라는 굳는다. 계급을 콘크리트에 굳히는 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배관이다.
그리고 이 구조에서 제일 위태로운 자리는 맨 아래가 아니다. 자기가 중간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급여가 낮아서 밀려나는 게 아니라 설명이 가능해서 밀려난다.
Bottom line: The screen exaggerates the set, not the direction.
그래서
영화가 우리를 지하로 내려보내는 건 협박이 아니다. 결과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에 가깝다.
100년 동안 같은 테스트를 돌렸고, 출력값도 충분히 쌓였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 완충자본을 더 쌓고 있는가, 아니면 배당으로 다 털어내고 있는가.
출처 — UN-Habitat 슬럼·비공식 정착지 추정치(2024년 기준, 11.6억 명 / 도시 인구 24.8%, 2000년 30.6%); IMF 「Gen-AI: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Future of Work」(2024); David Autor, 「Why Are There Still So Many Jobs?」(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015); Acemoglu & Restrepo, 「Tasks, Automation, and the Rise in US Wage Inequality」(2022); OpenResearch 기본소득 3년 실험 결과(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