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노키아는 핀란드 전체 수출의 20%가 넘었고, 헬싱키 증시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이 그 회사 하나였다. 당시 핀란드는 유럽의 우등생으로 불렸다. 통계 어디를 봐도 문제가 없었다.

무너진 건 노키아의 실적이 나빠졌을 때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이라는 다른 규격이 등장하면서, 노키아가 제일 잘하던 것의 값이 내려갔을 때였다. 그리고 그 충격을 나눠 질 다른 산업이 그 나라에는 없었다. 회사 하나의 판단 착오가 국가의 GDP 문제로 번역되는 데 3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47이 아니라 23.9를 보시라

9월 1일부터 10일까지 총수출은 349억 7,300만 달러, 전년 대비 82.6% 증가했다. 조업일수는 8.5일로 작년과 똑같았으니 일수 착시가 아니다. 반도체만 164억 8,300만 달러, 270.1% 늘었고 전체 수출 증가분의 약 76%를 단일 품목이 만들었다. 비중은 47.1%다.

그런데 더 눈에 걸리는 숫자는 47이 아니다. 1년 전 이 비중은 23.2%였다. 1년 만에 23.9%포인트가 움직였다.

비중이 높은 것과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는 것은 다른 상태다. 앞의 것은 굳어진 구조고, 뒤의 것은 아직 진행 중인 이동이다. 구조는 대응할 시간을 주지만 이동은 주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한국 수출은 뒤쪽에 있다.

대만향 수출이 176.0% 늘었다는 대목도 같이 봐야 한다. 파운드리 공정으로 들어가는 고부가 메모리다. 우리가 파는 상대가 최종 소비자에서 남의 공정 중간 단계로 옮겨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치사슬에서 위로 올라간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소식으로 읽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수는 하나인데 시장은 둘이다

자본시장 쪽 숫자는 더 노골적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합산 시가총액이 KOSPI 전체의 50.4%를 넘어섰다. 연초에는 37% 수준이었다. 여기서도 눈에 걸리는 건 절대 수준이 아니라 반년 남짓에 13%포인트가 움직였다는 속도다.

반도체 업종을 걷어내고 계산한 지수는 4,100~4,200선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명목 지수와 그 아래 깔린 시장이 두 배 가까이 벌어져 있다는 의미다.

실물 쪽도 같은 모양이다. 1분기 명목 GDP는 전기 대비 1.7%, 2분기는 0.6% 성장했고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를 바라본다. 그런데 성장 기여도는 반도체 순수출과 관련 설비투자에 몰려 있고, 건설·서비스업·내수는 반대편에 있다.

과거 조선이나 자동차 호황기에는 수출 대금이 협력업체와 고용을 거쳐 가계로 번역되는 경로가 있었다. 반도체 팹은 그 경로가 짧다. 수십조 원이 한 공장으로 들어가는데, 그 안에서 사람이 하는 일의 비중은 해마다 줄어든다. 수출이 사상 최대인데 시장 상인이 그걸 못 느낀다면, 통계가 틀린 게 아니라 돈이 지나가는 길이 달라진 것이다.

우리는 두 회사라 괜찮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비중은 그때 헬싱키 증시의 노키아와 같은 자리에 와 있다. 다른 점이라면 우리 쪽은 한 회사가 아니라 두 회사라는 것이다.

그게 위안이 되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두 회사는 같은 업황을 타고, 같은 고객을 보고, 같은 사이클에서 같이 웃고 같이 운다. 종목 수로는 분산이지만 위험으로는 분산이 아니다. 포트폴리오에 두 개를 담아도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우면 하나를 담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건, 자산배분의 기본이다.

핀란드와 다른 점을 굳이 찾자면 한국에는 조선과 방산과 자동차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산업들의 합이 지금 지수에서 차지하는 무게가 얼마인지는, 앞의 4,100~4,200이라는 숫자가 이미 답하고 있다.

골드만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골드만삭스가 KOSPI 목표치를 8,000, 9,000, 최상단 12,000까지 열어둔 근거는 명확하다. 올해 상장사 이익이 220~360% 늘고, 12개월 선행 PER은 5.3배로 7년 평균의 절반이다. 여기에 7.5배라는 보수적 배수만 얹어도 12,000이 기계적으로 나온다. 계산 자체는 틀린 데가 없다.

여기서부터는 리포트에 적힌 게 아니라, 표를 30년 들여다본 사람의 직업병이다. 감안하고 읽으시길.

나는 이런 표를 받으면 먼저 목표가를 지우고 분모만 남긴다. 분자가 커져서 싸 보이는 것과 분모가 작아서 싸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인데, 표 위에서는 둘이 똑같이 "저평가"로 적히기 때문이다. 지금 KOSPI의 PER 5.3배는 대부분 분자가 커진 결과다. 그리고 분자가 커져서 만들어진 저평가는, 분자가 한 분기만 흔들려도 사라진다. 싸진 게 아니라 잠깐 싸 보였을 뿐인 상태다.

이미 한 번 확인됐다. 6월 18일 9,000선을 돌파한 지수는 25일 뒤인 7월 13일 7,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그날 하루에만 669포인트, 8.95%가 빠졌고 SK하이닉스는 15.4% 떨어졌다.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6월 24일 장중 97.78까지 올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었고, 7월 중순에도 83선을 웃돌았다.

업황이 훼손된 게 아니었다. 빅테크의 AI 투자 가이던스에 의심 하나가 붙었을 뿐인데 그렇게 됐다. 삼성전자가 시장 기대를 웃도는 2분기 잠정실적을 내놓고도 주가가 급락한 날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실적이 좋아도 그럴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도 변동성의 원인으로 두 종목 편중과 레버리지 ETF·신용 잔고를 지목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반도체 사이클이 꺾인다는 얘기가 아니다. HBM 수요와 공급 제약은 실재하고, 전력·용수·인허가라는 물리적 병목이 역설적으로 과잉공급을 막고 있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있다. 이익이 실제로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그 이익이 어디에 몰려 있느냐다. 한 곳에서 잘 벌어도 경제는 굴러간다. 다만 그쪽이 흔들릴 때 반대편에서 받쳐줄 것이 남아 있느냐는 다른 질문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하나 더 걸리는 게 있다. 산업연구원은 한국이 HBM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더라도, 칩 설계와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를 모두 쥔 해외 빅테크의 수직 통합 구조 안에서는 고부가 하청에 머물 위험을 지적했다. 이 지적이 불편한 이유는 틀려서가 아니라, 지금 실적이 좋다는 사실과 전혀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사슬에서 아래 칸에 있는 회사도 호황기에는 돈을 잘 번다. 문제는 불황이 왔을 때 마진을 누가 먼저 깎느냐에서 갈리고, 그 결정권은 우리 쪽에 없다.

내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 지점은 두 군데다. 반도체 비중이 40%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오면서도 총수출이 유지된다면, 그건 다른 산업이 실제로 올라왔다는 뜻이고 이 걱정은 틀린 게 된다. 반대로 2027년 하반기 이후 증설 물량과 중국 범용 메모리 저가 공세가 겹칠 때 가격 모멘텀이 어떻게 되는지가 진짜 시험이다. 그때 확인될 것이다.

Bottom line: The size of the earnings is not the question. Where they sit is.

💡 집중도 지표를 볼 때 절대 수준보다 변화 속도를 먼저 본다. 1년에 20%포인트 이상 움직인 비중은 굳어진 구조가 아니라 아직 진행 중인 이동이다.

남는 질문

지수가 9,000을 향하는 경로는 수학적으로 타당하다. 숫자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지금 한국 증시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반도체가 좋다"에 베팅하고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걸고 있는 것은 그 판단이 틀렸을 때 받쳐줄 것이 남아 있느냐다. 핀란드도 마지막까지 전자를 샀다고 믿었다.

출처 — 관세청 수출입 현황(2026-09-01~09-10, 총수출 349.73억 달러 / 반도체 164.83억 달러 / 비중 47.1%); 한국은행 국민계정 및 금융안정 관련 보고서(레버리지 ETF·신용 잔고와 두 종목 편중을 변동성 요인으로 지목); 골드만삭스 KOSPI 목표치 및 EPS 전망 보도; 유진투자증권 '반도체 제외 KOSPI 4,100~4,200' 추정; 산업연구원(KIET) AI 가치사슬 종속 리스크 보고서; 6~7월 급락 관련 수치(9,000 돌파 6/18, 7,000 붕괴 7/13, 당일 -669p·-8.95%, SK하이닉스 -15.4%, VKOSPI 6/24 장중 97.78·7월 중순 83선)는 언론 보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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